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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자왈, 불재기위, 불모기정.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직위에 있지 않고서 그 정사를 논해서는 아니 된다.”


(풀이)

‘그 직위에 있지 않은 자’는 무책임한 방관자를 말한다. 이런 구경꾼들이 이런저런 참견을 늘어놓는 일은,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들이 매일 하는 짓들이다. 프로야구나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볼 때 어쩌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듯 싶다. 대안 따위는 없이 무작정 비판 아닌 비난을 늘어놓는가 하면, 대안이랍시고 다른 방도를 내어 놓는다 해도 이후 벌어질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일이 잘못된다 해도 “어? 안되네?”라거나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한 채 이번엔 그렇게 했다고 또 욕하기 일쑤다. 그런 행태를 비판하면 으레 “아니 야구 못하면 야구선수 욕하면 안되나? 노래 못하면 가수하면 안되나?” 따위의 말을 하며 굳이 대안과 비판의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 않는다.


자, 그럼 우리는 정치인들이 아무리 쌩ㄱㅈㄹ을 해도 우리가 그 직위에 있지 않으니 비판도 해서는 안되나?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 짤로 대신한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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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자왈, 독신호학, 수사선도. 위방불입, 난방불거. 천하유도즉현, 무도즉은. 방유도, 빈차천언, 치야, 방무도, 부차귀언, 치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독실하게 믿으면서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목숨을 걸고 도(道)를 지켜낸다.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곧 자신을 나타내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 가난하고 천한 것도 수치려니와,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 부유하고 귀한 것 역시 수치다.”


(풀이)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 ‘군자로서 해야 할 도리’는 세 번째 문장, ‘천하에 도가 있으면 곧 자신을 나타내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에 함축되어 있는데, 이는 “등용되면 도를 행하고, 그렇지 못하면 감추어 두어야 하는데,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이는 안회 너와 나 뿐이다.”(술이편 10장)라고도 말한 적이 있다. ‘안 되는 줄 아는 일이라도 옳은 일이면 행한다’는 유가(儒家)의 평소 가르침과는 어찌 보면 약간 거리가 있는데, 오히려 도가(道家)의 말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하긴, 공자의 문하에서 가장 도가적 색채가 짙은 사람이 바로 공자와 안회다.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읽으면, 일견 옳은 말이다 싶다가도 어째 좀 한가한 소리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이 나라 저 나라를 골라 살 수 있는 팔자 편한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하단 말인가. 다음의 말도 내 생각과 비슷할 것이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몸은 위태로운 나라에 들어와 있다.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몸은 어지러운 나라에 살고 있다.

 성현의 지혜도 땅과 때에 어긋나면 철벽에 수수깡화살을 쏜 것이나 같다.’

 이병주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구한말의 시인 민하(閔賀)가 한 말이다. 나고 자란 나라가 이미 위태롭고 어지러울 때, 어찌 그 나라를 쉽게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는데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으로) 가난하고 천하게 된 것은 글쎄, 그것을 수치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러나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 부유하고 귀하게 된’ 자들을 보아 왔기에, 그것이 수치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며, 나 또한 그런 부끄러운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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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

자왈, 삼년학, 불지어곡, 불역득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3년 동안 학문에 힘쓰면, 관직을 얻지 못하더라도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풀이)

 고작 3년 공부로 관직을 얻거나, 그와 다름없는 무언가를 얻는다고 하면, 초등학교부터 대학졸업까지 16년간 죄수처럼 갇혀 공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비웃을 일이다. 그들에게 왜 그리 쓸모없어 보이는 일을 굳이 그렇게 열심히 하려 드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그들도 그 이유를 잘 모른다고 하거나, 남들이 하니까, 부모가 시켜서,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할 것이다. 십수년을 죽을 각오로 하는 그 미친 짓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건 참 슬프고도 우스운 일이다. 그들이 하는 공부는 과연 공자가 말한 3년 공부와 무엇이 다르기에 그리 헛되단 말인가. 올해 학부모가 되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이런 것을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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