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자왈, 여유주공지재지미, 사교차린, 기여불족관야이.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공(周公)만큼의 재능과 훌륭함을 지니고 있더라도, 교만하고 또 인색하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것은 볼 것도 없다.”


(풀이)

 말했다시피 주공 단은 공자의 롤 모델이자 이상형이고 인격완성의 궁극이다. 그 주공을 끄집어냈다는 것은 그 예시와 가정의 지극함을 나타낸다. 감히 같은 인류라고 말하기조차 조심스러운, 신(神)과 맞먹을 만한 훌륭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라는 정도의 가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두 가지 잘못을 갖고 있다면, 뭐 더 볼 것도 없다고 한다. 그 두 가지 잘못이란, 교만과 인색이다.


 교(驕)는 무례하고, 버릇없고, 잘난척하는 것이다. 교만해지면 가벼워지고, 또한 그릇되기 쉽다. 누군가 잘못을 말해주어도 귀담아 듣지 않고 바로잡지 않는다. 특히나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자일 수록 교만은 쉽게 찾아오는 법이다.


 인(吝)은 욕심을 부리고 탐하여 아까워하는 것이다. 베풀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을 먹는다면 천하를 생각하기보다 자기 것만 챙기기 일쑤다. 어떤 군자도 그런 면모를 보였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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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好勇疾貧, 亂也.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

자왈, 호용질빈, 란야. 인이불인, 질지이심, 란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용맹을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하면 난을 일으키며,

사람이 어질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미워하면 난을 일으킨다.”


(풀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 손에 쥐어진 것이 칼 한 자루라면,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먼저 떠올릴까. 범죄의 당위성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의 심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흘 굶어 담 넘지 않는 사람 없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인간 이전, 생존을 충족시켰을 때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동물보다 어떤 점이 다르며 어떤 점이 나을까.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다고 곧잘 주장하는 것, 감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난을 일으키는 두 번째 이유, 그것은 바로 ‘누군가가 나를 너무 미워하는 것’이다. 내가 어질지 못한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 귀로 듣는다는 것은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는 짓이다. 그리하여 감정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릴 때, 사람은 이성의 끈을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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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자왈, 민가사유지, 불가사지지.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로 하여금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다.”


(풀이)

 자, 이 장의 뜻은 뭘까.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다.

 백성은 어리석으므로 계도해서 따라오게 할 수는 있지만, 깨우쳐 알게 할 수는 없다는 뜻일까.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알지 못한 채 따르게 할 수는 있다.

 이것은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자기가 원하는 데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과연 공자는 그러한 속 검은 소리를 한 것일까. 인의(仁義)를 말하고, 도덕을 말하며 군자연했지만 사실은 백성을 속여 고혈을 빨아먹으려는, 전근대적 봉건사회의 위정자일 뿐일까.

 나는 “불가(不可)” 두 글자, “할 수 없다”는 뜻을, “해서는 안된다.”로 해석해 보려 한다.

 그저 모르는 채 따르게 할 수는 있지만, 일단 백성이 ‘알게 된다면’ 결코 사악한 위정자의 꾀임에 따르지 않을 것이기에, ‘알게 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해놓고 보니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공자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백성의 힘과 뜻을 무시했던 것일까. 

<그리고, 백성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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