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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자왈, 십실지읍, 필유충신 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열 가구 정도 사는 작은 마을에도 나 정도로 성실하고 신용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데 있어서는 나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풀이)

 옛 글에 “군자는 열 가구 정도 되는 마을을 지날 때에도 수레에서 내리며, 몸을 구부린다. 거기에 덕을 갖춘 선비가 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겸손하기 위함이다.” 라고 했다. ‘열 가구의 작은 마을’이라 함은 좁은 지역을 말하지만, 그 정도에도 있을 법한 보통 사람들의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공자는, 덕행과 성실에서는 오히려 겸손하게 물러서지만, 학문을 사랑하고 배우기를 즐기는 일에는 대단한 자부심을 나타내고 있다.

 내일부터는 <옹야편>이다. 이 이상 연재해본 적은 없는데, 이번에 신기록을 세우나 싶다. 내 저질 인내력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공자 : 이 구역의 범생이는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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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 而內自訟者也.

자왈, 이의호. 오미견능견기과, 이내자송자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끝장이로구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꾸짖는 사람을 보지 못하겠으니!”


(풀이)

 인간인 이상 누구든 실수를 할 수도,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뒤에, 잘못을 자각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남을 대할 때보다 자기 자신을 대할 때 지나치게 너그럽기 마련이다. 공자는 그러한 것을 한탄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 스스로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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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衣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小子懷之.

안연계로시. 자왈, 합각언이지. 자로왈, 원거마의구, 여붕우공, 폐지이무감. 안연왈, 원무벌선, 무시로. 자로왈, 원문자지지. 자왈,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


(해석)

안연과 계로가 곁에서 모시고 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각자 너희들의 뜻을 얘기해주지 않겠느냐?”

자로가 말씀드렸다.

“수레, 말, 옷, 털옷을 벗들과 함께 사용하다가 그것이 못쓰게 되더라도 서운하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안연이 말씀드렸다.

“착한 일을 남에게 자랑하지 않고, 수고로운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자로가 여쭈었다.

“원컨대 스승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노인에게는 편안하게 하고, 벗들에게는 믿게 하며, 어린아이에게는 따르게 하고 싶다.”


(풀이)

 인물평이 주를 이루는 공야장편에서 이 사람들의 대화는 역시 그 사람 자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세 사람의 이상(理想)은 곧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었나를 잘 보여준다.

 자로는 역시 쾌남아다운 면을 보인다. 그까짓 물건 따위에 의리를 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친구 아이가!

 또, 안회는 역시 공자의 문하에서 으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인물이다. 저렇게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스스로가 저런 사람인 것이다. 역시 좀 재수는 없다.

 공자의 이상은 다분히 정치적인 것으로, 그의 덕치사상의 요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저런 사회가 있다면 살아보고 싶다. 노인을 편안하게 하고, 벗을 믿게 하며, 아이들을 따르게 하는 사회라...


<하지만 현실은.... '줄 수 있는 게~ 현수막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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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자왈, 교언영색족공, 좌구명치지, 구역치지. 닉원이우기인, 좌구명치지, 구역치지.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겉치레 인사와 꾸며서 웃는 얼굴로 공경을 다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좌구명이 수치로 여겼거니와 나도 수치로 여긴다.

원망을 숨기고 그 사람과 친한 척 꾸미는 것은

좌구명이 수치로 여겼거니와 나도 수치로 여긴다.“


(풀이)

 원문에서 족공(足恭)이라는 구절에 대해, 보통은 ① 걸음걸이가 정중함. ② 상대의 의향을 영접하여 극도로 공경함 이라는 두 가지 해석 중의 하나를 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그 정도면 충분히 공손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만족함’이라고 해석하였다. 마음이 깃들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말과 얼굴빛만으로 충분히 공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굴한 짓이다. 게다가 마음속으로는 원망하고 싫어하는 뜻을 품고 있으면서 그 사람과 친한 척하는 것은 위선이다. 공자는 그러한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공자와 그 좋아하고 싫어함을 같이하는 이 좌구명이라는 사람은 누굴까?

사마천의 사기에는 ‘노나라의 군자’라고만 나와 있지만^^;;;, 어떤 사람은 공자의 제자나 후배로서,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의 주석을 단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저자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공자의 선배로서 노나라사람들이 모두 존경하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나는 여기서 그런 평가나 정의에는 상관없이, 공자가 자기와 대등한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정도로 그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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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與之.

자왈, 숙위미생고직. 혹걸혜언, 걸제기린이여지.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미생고가 고지식하다고 한 사람이 누구냐? 누군가가 식초를 얻으러 갔더니, 이웃집에서 얻어주지 않았느냐.”


(풀이)

 미생고, 미생(微生)이 성, 고(高)가 이름, 노(魯)나라 사람. 다른 행적은 불분명하고, 논어에도 여기에만 나올 뿐이다. 고지식하기로 이름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미생고네 집에 누가 식초를 좀 얻으러 갔나보다. 이 우직한 사나이가 “없.어.요.” 하면 끝일 것을,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다른 집에 가서 얻어오는 융통성(!)을 발휘한 데에, 식초를 얻으러 간 사람도 아마 놀랐을 것이고, 그 말을 들은 공자도 놀라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이걸 가지고 미생고가 거짓말을 했다... 공자가 그것을 비난한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글쎄, 인생 그렇게 팍팍하게 살지 말자.

 근데, 인(仁)이 어쩌고, 군자(君子)가 어쩌고 하던 사람들이 식초 얻으러 다니고, 또 그거 좀 얻어줬다고 놀라고 하는 게 어째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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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伯夷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

자왈, 백이숙제, 불념구악. 원시용희.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이와 숙제는 지난날의 악(惡)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을 원망하는 일도 좀처럼 없었다.”


(풀이)

 그 유명한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말기 작은 나라인 고죽국(孤竹國)의 두 왕자다. 부친이 죽자 서로 즉위를 양보하다가 결국 형제가 다 나라를 떠나 다른 제후국인 주(周)나라로 가서 몸을 의탁한다. 그러면 왕은 누가 해? 그런데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쳐서 혁명을 일으키려 하자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을 붙들고 말린다.

“신하된 자로서 그 임금을 치는 것은 충(忠)이라 할 수 없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중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효(孝)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은나라를 무너뜨려 주나라의 천하를 이룩한다. 이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곡식을 먹는 것은 떳떳한 일이 아니라 하여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다가 끝내는 굶어죽고 만다. 곡식은 안되고 고사리는 괜찮냐 ㅋ 의(義), 인(仁), 도(道) 같은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 백이와 숙제를 얘기한다. 사마 천(司馬 遷)의 사기(史記) 열전(列傳)도 그 첫머리를 이 두 사람에게 바치며, 과연 하늘의 도(天道)라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옳지 못한 일을 한 사람은 천수를 누리고, 옳은 사람은 외롭고 쓸쓸히 죽어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리고, 그 옳은 일을 한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았을까?

 그 정도가 다를지는 모르나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군자인 공자는 거기 대해서 저런 관점이다.

 “지나간 악함을 생각하지 않고, 따라서 원망하는 일도 없었다.”

그 뒤에 이렇게 덧붙이고 싶었으리라.

“나도 원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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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在陳曰, 歸與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자재진왈, 귀여귀여. 오당지소자광간, 비연성장, 부지소이재지.


(해석)

공자께서 진나라에 계실 때에 말씀하셨다.

“돌아가자, 돌아가. 내 고향의 젊은이들은 꿈에 부풀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나, 나는 그것을 재단해 줄줄도 몰랐구나!”


(풀이)

 공자가 진나라에 간 것은 두 번, 이 얘기는 두 번째인 60세 때의 일일 것이다. 공자가 다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도한 노나라의 정치현실에 실망하여, 영명한 군주 아래에서 이상적인 정치를 펴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공자의 나이 54세 때에 시작되어 68세에 끝난 이 여행은 완전한 실패였다. 무도하고 혼미하기는 노나라나 다른 나라나 모두 마찬가지였던 거다. 여행의 중도에서 공자는 고향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고향의 젊은이들에게서 미래를 보고, 그들에게 희망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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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甯武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자왈, 영무자, 방유도즉지, 방무도즉우, 기지가급야, 기우불가급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행하여질 때에는 지혜로웠으며, 나라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는 바보가 되었다. 지혜로움은 흉내낼 수 있지만, 바보스러움은 흉내낼 수가 없다.”


(풀이)

 영무자. 성은 영(甯)씨, 이름은 유(兪), 무(武)는 시호. 위(衛)나라 문공(文公), 성공(成公)때의 명재상인데, 이 인물에 관해서는 다음의 이야기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노나라 문공 4년에 영무자가 노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노나라에서 그를 위해 신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극진한 향연을 베풀어주었다고 한다. 이에 영무자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어느 분께 이런 향연을 베푸는 것입니까?’라는 듯한 얼굴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에 맞지 않는 짓을 한 주인(노나라 사람)도, 신분에 맞지 않는 대접을 받을 뻔한 영무자 자신도 무도한 짓을 저지르는 것을 피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영무자의 ‘어리석은 짓’이라고 하는데, 글쎄. 과연 그게 어리석은 짓인지, 똑똑한 짓인지.

 아무튼, ‘나라에 도가 행하여질 때 나아가 쓰이고,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 몸을 숨겨 욕됨을 피한다.’라는 것은 논어전편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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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曰, 再斯可矣.

계문자삼사이후행. 자문지왈, 재사가의.


(해석)

계문자는 세 번 생각한 다음에 비로소 행동하였다. 공자께서는 그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두번으로 좋으리라.”


(풀이)

 계문자. 성은 계손(季孫)씨, 이름은 행보(行父), 문(文)은 시호. 노나라 문공(文公), 선공(宣公), 성공(成公), 양공(襄公)대를 거친 명재상이자 뛰어난 외교가였다. 항상 신중하고, 먼 앞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실수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공자는 이 사람의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제자들에게(혹은 그 말을 전해준 사람에게) ‘계문자쯤 되는 사람은 그렇게 신중했었어야 할지 모르지만, 너희들은 조금만 생각해도 괜찮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때로는 늦출 수 없는 일도 있는 행동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만약, 저 행(行)자가 언(言)자였다면, 삼사(三思)가 아니라 백사(百思)라도 적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이 많아서 탈이었던 나도, 한 때 ‘三思一言’(세번 생각하고 한번 말하기)을 좌우명으로 삼고 싶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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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張問曰, 令尹子文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子曰, 忠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崔子弑齊君, 陳文子有馬十乘, 棄而違之. 至於他邦, 則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之一邦, 則又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何如. 子曰, 淸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자장문왈, 영윤자문삼사위영윤, 무희색, 삼이지, 무온색. 구영윤지정, 필이고신영윤. 하여. 자왈, 충의. 왈, 인의호. 왈, 미지, 언득인. 최자시제군, 진문자유마십승, 기이위지. 지어타방, 즉왈, 유오대부최자야, 위지. 지일방, 즉우왈, 유오대부최자야, 위지. 하여. 자왈, 청의. 왈, 인의호. 왈, 미지, 언득인.


(해석)

자장이 여쭈어보았다.

“초나라 영윤 자문(子文)은 세 번 영윤에 임용이 되었습니다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으며, 세 번 물러났습니다만 조금도 섭섭해하는 기색 없이 전임영윤으로서 신임영윤에게 정사를 보고하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충실한 사람이니라.”

“인자(仁者:어진 사람)일까요?”

“글쎄다, 인(仁)까지는 아니지 않겠느냐?”

“최자(崔子)가 제(齊)의 임금을 죽였을 때, 진문자(陳文子)는 40마리의 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그것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다른 나라에 이르렀습니다만, ‘여기에도 우리 대부 최씨와 같은 사람이 있구나’하며 그 곳을 떠났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 갔습니다만, ‘역시 여기에도 우리 대부 최씨와 같은 사람이 있구나’하며 그 곳을 떠났습니다. 이것을 어찌 보십니까?”

“깨끗한 사람이니라.”

“인자일까요?”

“글쎄다, 인(仁)까지는 아니지 않겠느냐?”


(풀이)

 자장은 위정편 18장에 나오는 공자의 제자다.

 자문(子文)이라는 사람은, 초(楚)나라 사람으로, 성은 투(鬪)씨, 이름은 구어도(彀於菟), 자문은 그의 자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는데, 범이 주워다 젖을 먹여 길렀다고 한다. 본격 견훤 스토리 ㅋ 초나라 말로 구어도라는 말이 ‘범의 젖’이라는 뜻이라고 한단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 동네는 자기네 나라 안에서도 말이 다른가보다. 과연 비범한 인물이었는지,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건지 초나라의 재상인 영윤 벼슬을 세 번이나 지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재상 자리에 앉으면서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는 것은, 그 자리의 부귀나 권력을 탐하지 않고, 백성과 국가를 생각했을 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물러나면서 섭섭한 마음도 있을 수가 없고, 오로지 다음 영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인수인계를 잘 해주는 것이 맡은 바 할 일이었을 것이다. 영윤자리에 있으면서 한 푼도 개인의 재산으로 저축하지 않았다고 하니, 사무인계를 할 때에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었을 것이다.

 자장은 이 훌륭한 사람을 구체적인 실례로 들어, “인자란 이런 사람인가요?”하고 묻고 있다. 공자는 일단, 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충실한 사람”이라고 해준다. 그러나, 자기 문하의 모든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목표인, 인(仁)을 대표하기엔 모자람을 느껴, “글쎄다...”하고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다. 인(仁)은 그만큼 높고 큰 목표이니까.


 최자(崔子)라는 사람은 다이나믹 듀오의 제나라의 대부인데, 본이름은 최저(崔杼)라고 한다. 자기가 섬기던 임금인, 제나라의 장공(莊公)이 자기 처와 간통한 사실을 알고, 노하여 장공을 시해했다. 사랑과 전쟁 춘추전국판 그런 정변이 일어나자, 제나라의 대부들은, 다른 나라로 도망치거나, 최저의 손에 죽었는데, 태사(太史: 나라마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맡은 사람, 세습되기도 했다.)씨가 붓을 들어 기록하기를, “최저가 그 임금을 죽였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최저가 태사씨를 죽이고, 기록을 지웠다. 역적의 이름을 얻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태사의 아우가 다시 썼다. “최저가 임금을 죽이고, 그 사실을 쓴 태사씨를 죽였다.” 최저가 다시 그를 죽였다. 그 아우가 또 썼다. 그도 죽였다. 그 아우가 또 썼다. 또 죽였다. 쓰는 놈이나 죽이는 놈이나 독하기 짝이 없다^^;;;; 그 다음 아우가 또 썼는데, 이제는 최저도 지쳤는지 내버려두었다. 대가족 만세!

 진문자는, 제나라의 대부로서, 성은 진(陳)씨, 이름은 수무(須無), 문(文)은 그의 시호인데, 시호에서 볼 수 있듯이 훌륭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진문자 역시 도망간 대부 중의 하나로, 명마를 40마리나 갖고 있었다면 상당한 부호였던 듯한데, 그 재산을 모두 버리고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끔찍한 제나라를 떠난 것이다. 그리고 도착한 다른 나라들. 거기에서도 신하가 임금을 업신여기는 꼴을 보게 된다. 진문자는 한탄하며 그 나라들을 떠난다. 공자는 이 사람에게도 “깨끗한 사람”이라는 평은 하지만, 인자의 위치에 놓지는 않는다. 

<그리고 최자는 2,500년 뒤 우리나라에 환생하여서도 태사씨같은 네티즌들에게 고통받게 되...기는 개코.. 아니 개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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