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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자왈, 독신호학, 수사선도. 위방불입, 난방불거. 천하유도즉현, 무도즉은. 방유도, 빈차천언, 치야, 방무도, 부차귀언, 치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독실하게 믿으면서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목숨을 걸고 도(道)를 지켜낸다.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곧 자신을 나타내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 가난하고 천한 것도 수치려니와,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 부유하고 귀한 것 역시 수치다.”


(풀이)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 ‘군자로서 해야 할 도리’는 세 번째 문장, ‘천하에 도가 있으면 곧 자신을 나타내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에 함축되어 있는데, 이는 “등용되면 도를 행하고, 그렇지 못하면 감추어 두어야 하는데,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이는 안회 너와 나 뿐이다.”(술이편 10장)라고도 말한 적이 있다. ‘안 되는 줄 아는 일이라도 옳은 일이면 행한다’는 유가(儒家)의 평소 가르침과는 어찌 보면 약간 거리가 있는데, 오히려 도가(道家)의 말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하긴, 공자의 문하에서 가장 도가적 색채가 짙은 사람이 바로 공자와 안회다.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읽으면, 일견 옳은 말이다 싶다가도 어째 좀 한가한 소리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이 나라 저 나라를 골라 살 수 있는 팔자 편한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하단 말인가. 다음의 말도 내 생각과 비슷할 것이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몸은 위태로운 나라에 들어와 있다.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몸은 어지러운 나라에 살고 있다.

 성현의 지혜도 땅과 때에 어긋나면 철벽에 수수깡화살을 쏜 것이나 같다.’

 이병주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구한말의 시인 민하(閔賀)가 한 말이다. 나고 자란 나라가 이미 위태롭고 어지러울 때, 어찌 그 나라를 쉽게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는데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으로) 가난하고 천하게 된 것은 글쎄, 그것을 수치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러나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 부유하고 귀하게 된’ 자들을 보아 왔기에, 그것이 수치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며, 나 또한 그런 부끄러운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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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

자왈, 삼년학, 불지어곡, 불역득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3년 동안 학문에 힘쓰면, 관직을 얻지 못하더라도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풀이)

 고작 3년 공부로 관직을 얻거나, 그와 다름없는 무언가를 얻는다고 하면, 초등학교부터 대학졸업까지 16년간 죄수처럼 갇혀 공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비웃을 일이다. 그들에게 왜 그리 쓸모없어 보이는 일을 굳이 그렇게 열심히 하려 드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그들도 그 이유를 잘 모른다고 하거나, 남들이 하니까, 부모가 시켜서,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할 것이다. 십수년을 죽을 각오로 하는 그 미친 짓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건 참 슬프고도 우스운 일이다. 그들이 하는 공부는 과연 공자가 말한 3년 공부와 무엇이 다르기에 그리 헛되단 말인가. 올해 학부모가 되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이런 것을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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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자왈, 여유주공지재지미, 사교차린, 기여불족관야이.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공(周公)만큼의 재능과 훌륭함을 지니고 있더라도, 교만하고 또 인색하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것은 볼 것도 없다.”


(풀이)

 말했다시피 주공 단은 공자의 롤 모델이자 이상형이고 인격완성의 궁극이다. 그 주공을 끄집어냈다는 것은 그 예시와 가정의 지극함을 나타낸다. 감히 같은 인류라고 말하기조차 조심스러운, 신(神)과 맞먹을 만한 훌륭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라는 정도의 가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두 가지 잘못을 갖고 있다면, 뭐 더 볼 것도 없다고 한다. 그 두 가지 잘못이란, 교만과 인색이다.


 교(驕)는 무례하고, 버릇없고, 잘난척하는 것이다. 교만해지면 가벼워지고, 또한 그릇되기 쉽다. 누군가 잘못을 말해주어도 귀담아 듣지 않고 바로잡지 않는다. 특히나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자일 수록 교만은 쉽게 찾아오는 법이다.


 인(吝)은 욕심을 부리고 탐하여 아까워하는 것이다. 베풀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을 먹는다면 천하를 생각하기보다 자기 것만 챙기기 일쑤다. 어떤 군자도 그런 면모를 보였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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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好勇疾貧, 亂也.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

자왈, 호용질빈, 란야. 인이불인, 질지이심, 란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용맹을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하면 난을 일으키며,

사람이 어질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미워하면 난을 일으킨다.”


(풀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 손에 쥐어진 것이 칼 한 자루라면,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먼저 떠올릴까. 범죄의 당위성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의 심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흘 굶어 담 넘지 않는 사람 없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인간 이전, 생존을 충족시켰을 때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동물보다 어떤 점이 다르며 어떤 점이 나을까.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다고 곧잘 주장하는 것, 감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난을 일으키는 두 번째 이유, 그것은 바로 ‘누군가가 나를 너무 미워하는 것’이다. 내가 어질지 못한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 귀로 듣는다는 것은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는 짓이다. 그리하여 감정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릴 때, 사람은 이성의 끈을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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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자왈, 민가사유지, 불가사지지.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로 하여금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다.”


(풀이)

 자, 이 장의 뜻은 뭘까.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다.

 백성은 어리석으므로 계도해서 따라오게 할 수는 있지만, 깨우쳐 알게 할 수는 없다는 뜻일까.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알지 못한 채 따르게 할 수는 있다.

 이것은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자기가 원하는 데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과연 공자는 그러한 속 검은 소리를 한 것일까. 인의(仁義)를 말하고, 도덕을 말하며 군자연했지만 사실은 백성을 속여 고혈을 빨아먹으려는, 전근대적 봉건사회의 위정자일 뿐일까.

 나는 “불가(不可)” 두 글자, “할 수 없다”는 뜻을, “해서는 안된다.”로 해석해 보려 한다.

 그저 모르는 채 따르게 할 수는 있지만, 일단 백성이 ‘알게 된다면’ 결코 사악한 위정자의 꾀임에 따르지 않을 것이기에, ‘알게 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해놓고 보니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공자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백성의 힘과 뜻을 무시했던 것일까. 

<그리고, 백성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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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자왈, 흥어시, 입어례, 성어락.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로써 일어나고, 예로써 서고, 악으로써 이룬다.”


(풀이)

 인간됨의 형성과정을 말한다고 한다. 시와, 예와, 악을 배워야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 전은 그럼... 뭐?


 공자는 시(詩)를 굉장히 중시한다. “너희는 왜 시를 배우지 않느냐?”(양화편 9장),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이 막힌다.”(계씨편 13장)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예(禮)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 설 수 없다.”(계씨편 13장), “예를 모르면 세상에서 입신할 수 없으며, 말을 모르면 사람을 알 수 없다.”(요왈편 3장) 요컨대, 시, 예, 악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교양이라는 소리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연재를 잠시 쉬었는데, 이 장을 다시 펼쳐 보니 왜 그런지 알겠다. 정말 재미가 없다. 내 경우, 논어에서 가장 견뎌내며 읽기 힘든 편들이 바로, 술이편, 태백편, 향당편인데, 지금 딱 그 가운데 와 있다. 이 다음 향당편을 과연 넘어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그 사막같은 곳을 지나고 나면 글자 한자 한자가 다 보석같은 선진편, 안연편, 자로편이 나온다. 그렇기에 포기하기도 아쉬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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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子曰,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葸,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君子篤於親, 則民興於仁, 故舊不遺, 則民不偸.

자왈, 공이무례즉로, 신이무례즉사, 용이무례즉란, 직이무례즉교.

군자독어친, 즉민흥어인, 고구불유, 즉민불투.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공경에 예(禮)가 없으면 그저 헛수고,

신중함에 예가 없으면 그저 주눅이 든 것 뿐,

용기에 예가 없으면 그저 난폭,

정직에 예가 없으면 그저 가혹한 것일 뿐이다.

군자가 친척에게 후하게 하면 백성들 사이에 인(仁)이 왕성하게 흥하며,

옛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은 박정해지지 않는다.”


(풀이)

 공경, 신중, 용기, 정직은 모두 훌륭한 덕목이지만, 거기에 예(禮)가 없다면 앙꼬없는 찐빵, 고무줄 없는 빤쓰가 되어 그 빛이 바랜다는 얘기다.


 ‘군자가...’ 이후의 구절은 증자(曾子)의 말이라고 한다. 군자는 모든 백성의 모범이 되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이니, 그가 솔선하여 훌륭한 일을 하면 백성들이 모두 본받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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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泰伯, 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자왈, 태백, 기가위지덕야이의. 삼이천하양, 민무득이칭언.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태백은, 가히 최고의 덕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이나 천하를 양보하였지만, 백성들은 그것을 칭송할 길이 없었다.”


(풀이)

 태백편의 첫 장을 이해하려면 역시나 기본지식이 필요하다.

 공자가 살고 있는 시대는 약해졌으나마 주(周)나라 왕실의 천하였다. 주나라의 왕실은 문왕(文王)-무왕(武王)으로 이어졌으며 무왕대의 혁명으로 천하를 차지하였다. 문왕의 아버지는 계력(季歷)이었고 그에게 두 형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태백(泰伯)과 중옹(仲雍)이다. 실질적으로 왕조를 창업한 주 무왕의 할아버지 형제들인 셈인데, 그 맏형 태백이 오늘 장의 주인공이다.


 이 삼형제의 아버지는 태왕(太王)이라는 양반이었는데, 이 아버지가 보기에 셋째 계력이 가장 어질고 현명하여, 내심 그가 왕위를 물려받기를 원했으나, 장자계승의 원칙이 마음에 걸려 주저하고 있었다. 역시 아우의 현명함을 아는 두 형 태백과 중옹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주나라를 떠나 그 당시만 해도 야만인들이 사는 땅이었던 오(吳)나라로 도망가 버렸다.(1) 아버지 태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주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스스로 부모를 버린 후레자식이 되어 그대로 계력이 상주가 되도록 만들었다. (2) 계력이 태백에게 돌아오도록 간곡히 부탁하였으나 태백은 머리를 산발하고 몸에 문신을 하여 완전히 오랑캐가 되어버려 왕위에 대한 미련을 아예 버렸다.(3) 이 세가지를 두고 ‘세번 양보했다’고 하는 것이다. 훌륭한 일이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므로 당대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고, ‘칭송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태백이 양보한 것은 ‘천하’가 아니라 그저 ‘주나라의 왕위’일 뿐이다. 그 당시는 아직 은(殷)나라의 천하였고 주나라는 그 제후국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대의를 위해, 보장된 자리와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을 인생을 택했다는 것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 하다. 그리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했기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데도 그렇게 했다는 데에 그 덕은 더 높이 평가받는다. 불교에서도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양녕대군 - 세종 스토리를 생각했을 수도 있겠

다.


 그런데 중옹은? 그리고 효령대군은? 이 사람들은 칭찬에서도 빠진다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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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溫而厲, 威而不猛, 恭而安.

자온이려, 위이불맹, 공이안.


(해석)

공자께서는 온화하되 엄격하셨고,

위엄이 있으시되 무섭지 아니하셨으며,

공손하시되 침착하고 편안하셨다.


(풀이)

 공자를 평한 이 말은 증자(曾子:증삼)가 한 말이라고 한다. 대비되는 두가지 말을 병렬해서 공자의 인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에겐 모든 덕성이 갖추어져 있으나 그것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편향되어 있기 쉽다. 그러나 군자는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되 조화를 이루어 중용을 지킨다. 증삼의 이 말은, 군자로서의 공자의 면모를 나타내는 말이라 하겠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죽도 밥도 아니네... 라고 생각한 사람은 나랑 뭔가 통하는 데가 있는 거다. 아아 지겨운 술이편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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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

자왈, 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편안하여 마음이 넓고 너그러우며, 소인은 항상 초조하고 안달하느니라.”


(풀이)

이건 뭐 설명이 필요한지... 그래 내가 초조한 건 소인이기 때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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