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원문)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자공왈, 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하여. 가위인호. 자왈, 하사어인. 필야성호. 요순기유병제. 부인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해석)

자공이 말하였다.

“만일 은혜를 널리 백성에게 베풀 수가 있고 환난으로부터 민중을 건질 수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仁)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仁)에 그치겠느냐. 그야말로 성(聖)일 것이다. 요임금도 순임금도 그것으로 애태웠을 것이다.

인자(仁者)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우며,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것을 남에게 이루게 한다. 자기를 미루어 남을 이해한다면 가히 인(仁)의 방법이라 할 것이다.”


(풀이)

 옹야편의 마지막 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편들과 마찬가지로 약간 이질적인 장이 붙어있다. 유독 긴 분량도 후대에 덧붙여진 장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부채질한다.


 자공의 질문을 쓰면서 입으로 되뇌어보았다. 은혜를 백성에게 베풀고 환난으로부터 민중을 건진다....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민주정이든 뭐든 정치체제를 막론하고 저런 위정자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원론적으로 위정자란 저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저 말에 시선이 못박혀 좀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내가 저런 위정자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은 있었으되 내가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공자도 나와 크게 다른 생각은 아니었나보다.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보통 공자는 인(仁)의 가치를 최상으로 치기에, 좀체 인(仁)의 경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맹무백이 제자들이 어지냐(仁)고 물었을 때(공야장편 8장)도 어질다고 말하지 않았고, 자문, 진문자처럼 훌륭한 사람들에게도 ‘글쎄다 인(仁)과는 조금 다르지 않겠느냐’(공야장편 19장)이라고 했다. 자공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엔 인(仁)에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성스럽다고까지 말한다. 요(堯)와 순(舜)은 전설적인 성군으로, 중국인들의 꿈의 시대를 다스렸던 위대한 지도자가 아닌가. 그들도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는 것이다. 최상의 찬사다.


 그 뒤의 말은, ‘어떠한 마음이 인(仁)의 바탕이 되는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욕구와 소망을 살펴보고 그것으로 미루어 남이 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하여, 그것을 이루어주는 마음이 바로 인(仁)이라고 한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것으로(吾心卽汝心),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易地思之)이며, 내가 받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己所不欲 勿施於人) 것이다.


 내일부터는 제7편인 술이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이편(述而篇) 제 2 장  (0) 2013.11.15
술이편(述而篇) 제 1 장  (0) 2013.11.14
옹야편(雍也篇) 제 30 장  (0) 2013.11.13
옹야편(雍也篇) 제 29 장  (0) 2013.11.12
옹야편(雍也篇) 제 28 장  (0) 2013.11.11
옹야편(雍也篇) 제 27 장  (0) 2013.11.1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원문)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자왈, 중용지위덕야, 기지의호. 민선구의.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이라는 덕은 참으로 지극히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중용을 지키는 사람이 적어진 지도 오래되었다.”


(풀이)

 정이천의 말에 따르면 “치우치지 않음을 중(中)이라 하고, 변치 않음을 용(庸)이라 하니, 중은 천하의 바른 도(道)이고, 용은 천하의 정해진 이(理)이다. 세상의 가르침이 쇠퇴한 후부터 사람들이 중용의 도를 행하는 데 흥기하지 않아서 이 덕을 간직한 이가 적은 지 오래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유교의 경전을 말할 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든다.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사서(四書)라 하고, 시경(詩經, 혹은 모시(毛詩)), 서경(書經, 혹은 상서(尙書)), 역경(易經, 혹은 주역(周易))을 삼경(三經)이라 한다. 중용은 그 경전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려니와, 덕목 그 자체이기도 하다.


 보통 중도(中道)라 하면, 흑과 백, 그 가운데의 회색분자를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중용의 길은 그렇지 않다. 흑도 백도 그 안의 수많은 것들도 다 떠안는 왕도(王道), 그것이 군자가 나아갈 중용의 길이다. 

<...라고 이 양반이 얘기했던가 그렇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이편(述而篇) 제 1 장  (0) 2013.11.14
옹야편(雍也篇) 제 30 장  (0) 2013.11.13
옹야편(雍也篇) 제 29 장  (0) 2013.11.12
옹야편(雍也篇) 제 28 장  (0) 2013.11.11
옹야편(雍也篇) 제 27 장  (0) 2013.11.10
옹야편(雍也篇) 제 26 장  (0) 2013.11.09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원문)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자왈, 군자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문(文)에 널리 배우고, 예(禮)로 단속한다면,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풀이)

 문(文)은 그저 단순히 글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서예악의 고전문화와 교양일반을 말한다. 박학(博學)은 널리 배움. 약(約)은 단속하여 다잡음. 불(弗)은 불(不). 반(畔)은 배반함을 말한다. 어긋난다는 것은 도(道)에서 어긋남을 가리킨다.


 학문을 닦고 예를 지킨다는 것이 군자와, 또 그 군자가 되려고 하는 공자 문하의 제자들에게 필수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옹야편(雍也篇) 제 29 장  (0) 2013.11.12
옹야편(雍也篇) 제 28 장  (0) 2013.11.11
옹야편(雍也篇) 제 27 장  (0) 2013.11.10
옹야편(雍也篇) 제 26 장  (0) 2013.11.09
옹야편(雍也篇) 제 25 장  (0) 2013.11.08
옹야편(雍也篇) 제 24 장  (0) 2013.11.07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원문)

宰我問曰, 仁者, 雖告之曰, 井有仁焉. 其從之也.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재아문왈, 인자, 수고지왈, 정유인언. 기종지야. 자왈, 하위기연야. 군자가서야, 불가함야, 가기야, 불가망야.


(해석)

재아가 여쭈었다.

“어진 사람은, 다른 어진이가 우물에 빠져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구하러 따라 들어가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그렇게 하겠느냐. 군자는 거기까지 갈 수는 있지만 구덩이에 빠지지는 않는다.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아예 사려를 잃게 할 수는 없다.”


(풀이)

 재아는 공야장편 10장에서 낮에 처자빠져 자다가 공자한테 “아이고 이시키야 니는 글러처먹었어.” 소리를 들은 제자다. 말솜씨가 아주 뛰어났다고 하지만, 그 덕이 변설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다. 그 재아가 여기서 또 공자의 심기를 건드린다.


 어진 이가 우물에 빠졌다고 한다. 다른 어진 이가 그것을 들었다. 자, 그를 구하러 자기도 따라 들어가야 하는가?

이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리고 재아는 공자에게서 어떤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말했다시피 재아는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고, 스스로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공자는 그것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공자 문하에서 ‘말만 잘하는 사람’은 인(仁)과 거리가 멀다고 하는 말까지 듣는다.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가 슬로건인 것이다.

재아는 그것이 불만스럽지 않았을까?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재아의 저 질문이 도발로 보인다. 극한상황을 설정해 놓고, 자, 그 잘났다는 너희는 어떻게 해볼래?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그 훌륭하다는 어진 사람이 우물에 빠졌다. 구해야 한다 구해야 한다 말만 할 거냐? 아니잖아 너희들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애들이니까. 뛰어들어야지? 그렇지? 자 대답해봐 공자영감. 재아는 그런 표정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다음의 공자의 대답 때문이다. 그냥 ‘구하러 가야지’ 라거나 ‘그래도 위험한 짓은 하지 말아라’라고 하지 않고, 구덩이(함정)에 빠진다거나, 속인다거나, 사려를 잃는다는 둥의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재아의 말을 함정이나 말장난이라고 여기는 것 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본문의 欺와 罔은 둘 다 속인다는 뜻이 있으나, 欺는 이치가 있는 것으로 속이는 것, 罔은 이치가 없는 것으로 속이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한 말, ‘우물가로 갈 수는 있으나 빠지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은, 몸이 우물가에 있어야 우물 안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이나, 같이 우물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 안의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니, 군자가 비록 사람을 구제함에 간절하여 자기 몸을 돌보지 않으나 응당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의 말은 재아의 물음에 대답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저 비겁한 변명일 뿐일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옹야편(雍也篇) 제 28 장  (0) 2013.11.11
옹야편(雍也篇) 제 27 장  (0) 2013.11.10
옹야편(雍也篇) 제 26 장  (0) 2013.11.09
옹야편(雍也篇) 제 25 장  (0) 2013.11.08
옹야편(雍也篇) 제 24 장  (0) 2013.11.07
옹야편(雍也篇) 제 23 장  (0) 2013.11.06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원문)

子曰, 觚不觚, 觚哉. 觚哉.

자왈, 고불고, 고재. 고재.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고(觚)가 고가 아니니, 고야! 어디로 갔느냐, 고야!”


(풀이)

 이 이야기는 공자가 고스톱을 치다가 점수가 나서 고를 외치는 소리는 물론 아니고, 쓸데없는 개드립은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아마도 공자가 술을 마시다가 한 말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고(觚)는 네모나게 각진 술잔을 말하는데, 이 잔이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말일까?


 고는 말했다시피 각진 술잔이다. 그런데 이 무렵, 그 모서리가 없어졌다. ‘네모난 술잔’의 ‘네모’가 없어졌다면, 그 술잔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공자의 시대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중이었다. 왕이 왕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한 그런 시대였다. ‘네모나지도 않은 네모진 술잔’의 세상이 된 것이다. 공자는 술잔에 빗대어 그것을 개탄한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옹야편(雍也篇) 제 27 장  (0) 2013.11.10
옹야편(雍也篇) 제 26 장  (0) 2013.11.09
옹야편(雍也篇) 제 25 장  (0) 2013.11.08
옹야편(雍也篇) 제 24 장  (0) 2013.11.07
옹야편(雍也篇) 제 23 장  (0) 2013.11.06
옹야편(雍也篇) 제 22 장  (0) 2013.11.05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원문)

子曰, 齊一變, 至於魯, 魯一變, 至於道.

자왈, 제일변, 지어로, 로일변, 지어도.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나라는 한번 변하면 노나라에 다다르고,

노나라는 한번 변하면 도(道)에 다다르리라.”


(풀이)

 이 두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그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저 앞 백이숙제 얘기 때 나왔던 주나라 무왕의 역성혁명을 말해야 한다. 당시는 은(殷또는 상(商))나라의 시대였는데,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은 그 앞 왕조 하나라 걸왕에 못지 않은 폭군이었다. 그 무도함을 응징하기 위해 주 무왕이 군사를 일으켰는데, 그 무왕의 책사(策士)가 유명한 태공망 강자아 여상, 즉 우리가 잘 아는 강태공이다. 혁명이 성공하자, 강태공의 지대한 공을 높이 평가하여, 무왕은 제나라를 그에게 영지로 봉하여 준다. 제나라의 공실은 그의 후예들이다.


 노나라로 가보자. 노나라의 시조는 무왕의 동생 주공 단(周公 旦)인데, 이 역시 혁명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혁명의 이론적 기반을 다지고, 웅변과 연설로 사람들을 모으고 설득했으며,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형에게 천하를 주었다. 주공의 업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형인 무왕이 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고 어린 아들, 성왕이 즉위하자, 주공은 섭정으로 조카를 보필한다.

 형은 죽고, 조카는 어리며, 천하의 인심은 안정되지 못한 때, 욕심이 있는 자라면 찬탈을 꿈꾸었을 것이고, 능력이 없는 자라면 흔들리는 천하를 바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공은 깔끔하고 훌륭하게 해낸다. 노나라 공실은 이 훌륭한 주공의 후예다. 공자가 평생 존경하고 꿈꾸고 숭배하며 닮으려고 했던 인물이 바로 이 주공 단이다. 물론 자기 나라 시조라서 그런 것도 있을 것 같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고, 두 나라는 갈 길을 달리한다. 제나라는 아주 국력이 강한 나라여서, 춘추오패(춘추시대의 다섯 패자), 전국칠웅(전국시대의 일곱 강국)에 항상 끼며, 남쪽의 초나라, 서쪽의 진나라와 더불어 항상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힘에 의존한 패도정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노나라는 아주 약했다. 다른 나라에 싸움을 좀체 걸지도 못했고, 싸웠다 하면 지기 일쑤였다. 공자의 말년에 제나라가 대규모로 침공해 올 기미를 보이자, 공자는 자공을 보내 외교술로 겨우 막아내는데, 그때도 대놓고 노나라는 아주 약하다는 말이 자공의 입에서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그렇다면, 이 강대국인 제나라가 한번 변혁하여 겨우 노나라에 이르고, 약소국인 노나라는 변혁하면 선왕들의 도에 이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반대로 되어야 상식적으로 옳은 소리가 아닐까? 공자의 쩌는 자기나라 부심...?


 주자는 이렇게 말한다.

“공자 당시에 제나라의 풍속은 이익을 우선으로 여기고 과장과 속임을 좋아했으니, 바로 패도정치의 남은 습속이요, 노나라는 예절을 중히 여기고 신의를 숭상하여 아직도 선왕의 유풍이 남아 있었다. 다만 어진 사람이 죽고 훌륭한 정치가 그쳐 폐지됨과 실추됨이 없지 않았다. 도는 선왕의 도이다. 두 나라의 정치는 풍속에 아름답고 나쁜 차이가 있으므로 변화하여 선왕의 도로 감에 어려움과 쉬움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풀어 말하자면, 국력을 키우기 위해 인의와 예절을 저버린 제나라보다, 비록 약소하지만 도의와 예절을 지키는 노나라가 더 낫다는 말이다. 역시 그때도 국뽕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옹야편(雍也篇) 제 26 장  (0) 2013.11.09
옹야편(雍也篇) 제 25 장  (0) 2013.11.08
옹야편(雍也篇) 제 24 장  (0) 2013.11.07
옹야편(雍也篇) 제 23 장  (0) 2013.11.06
옹야편(雍也篇) 제 22 장  (0) 2013.11.05
옹야편(雍也篇) 제 21 장  (0) 2013.11.04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원문)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동적이고, 어진 자는 정적이다.

지혜로운 자는 낙천적이고, 어진 자는 장수를 누린다.”


(풀이)

 유명한 장이다. 논어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지나가다 한번쯤 ‘지자요수 인자요산’이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번지에게 지(知)와 인(仁)을 말한 김에, 지자(知者)와 인자(仁者)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부연하여 설명하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말할 것도 없이 아주 영리하다. 뭐야 이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민활하게 움직이는 그의 머리와 생각은 마치 물과 같아서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아주 자유롭다. 그래서 부드럽고 동적이다. 또한 지혜롭기에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 법’(流水不爭先)을 알아서 순리를 거스르는 무리한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삶은 항상 즐겁고 낙천적이다. 바위를 만나도, 폭포를 만나도 결국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멀리 바다로 갈 것을 아니까 원망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어진 자는 흔들림이 없다. 착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굳건한 확신이 있다. 인(仁)과 의(義)를 차곡차곡 쌓아 만든 호연지기는 든든히 대지에 뿌리를 내려 마치 거대한 산과 같다. 그 산은 아주 넓고 커서 풀과 나무, 새와 짐승을 내치지 않고 가득 품어 안아도 남음이 있다. 작은 돌이라고 해서 하찮다고 저버리지 않고, 큰 바위라고 해서 무겁다고 하지 않는다. 비바람이 쳐도, 땡볕이 내리쬐어도,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도 그 산은 조금도 힘들어 하거나 비틀거리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조용히 굳게 서 있다.


 어떤 삶이 더 마음에 드는가?

 그리고 어디에 더 가까운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옹야편(雍也篇) 제 25 장  (0) 2013.11.08
옹야편(雍也篇) 제 24 장  (0) 2013.11.07
옹야편(雍也篇) 제 23 장  (0) 2013.11.06
옹야편(雍也篇) 제 22 장  (0) 2013.11.05
옹야편(雍也篇) 제 21 장  (0) 2013.11.04
옹야편(雍也篇) 제 20 장  (0) 2013.11.03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원문)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 曰,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번지문지. 자왈,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문인. 왈, 인자선난이후획, 가위인의.


(해석)

번지가 지혜에 대하여 여쭈어보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이 옳다고 하는 일에 힘쓰고, 신(神)을 존경하면서도 멀리하면, 지혜롭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인(仁)에 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자는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이익을 얻는 것은 그 뒤의 일로 하니, 그리하면 가히 어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풀이)

 번지는 공자의 제자로, 위정편 5장에서 공자의 수레를 몰았던 사람이다. 그냥 운전수가 아니라 제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여기서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하고 있다. 지(知)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仁)이란 무엇인가.


 공자는 여기서 ‘백성의 뜻’을 이야기한다. 왕이 지배하고, 제후가 권력을 갖던 시절이지만 공자는 ‘백성의 뜻’을 헤아려 그에 힘쓰는 것이 바로 ‘지혜’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낱 ‘귀신’에 불과할 뿐인 ‘신’에게는, 존경을 바치는 것으로 족하지 거기 매달리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2,500년 전의 말로는 파격적인 소리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공자 당대에도 “백성이 곧 신의 주인이다.”라는 말도 있었고, “나라가 바야흐로 흥하려 할 때에는 백성에게 묻고, 바야흐로 망하려 할 때에는 신에게 묻는다.”는 말도 있었던 것을 보면, 그 때도 깨어있는 사람들은 있었나보다.


 이 문답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래서 이 장의 대화를, 번지가 벼슬살이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인(仁)을 물었을 때의 답,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그 뒤에 이익을 구한다.”는 것도 벼슬아치가 해야 할 덕목이다. 공직에 복무하는 제자에게 주는 가르침인 것이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제자의 인품에 맞추어 각기 다른 가르침을 주었던 공자의 평소 교육방침으로 보아, 번지는 평소 저 말과 반대되는 사람이었을 확률이 높다. 즉, ‘백성의 뜻은 묻지 않고 신에게만 매달리며, 힘써 노력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익을 먼저 찾으려 하는 벼슬아치’였기가 쉽다. 실제로 그랬다면, 이 말을 듣고 얼굴이 꽤나 붉어졌을 것이다. 

<한번 더 말한다. “나라가 흥할 때는 백성에게 묻고, 망할 때는 신에게 묻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옹야편(雍也篇) 제 24 장  (0) 2013.11.07
옹야편(雍也篇) 제 23 장  (0) 2013.11.06
옹야편(雍也篇) 제 22 장  (0) 2013.11.05
옹야편(雍也篇) 제 21 장  (0) 2013.11.04
옹야편(雍也篇) 제 20 장  (0) 2013.11.03
옹야편(雍也篇) 제 19 장  (0) 2013.11.02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원문)

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자왈, 중인이상, 가이어상야, 중인이하, 불가이어상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中) 이상의 사람에게는 높은 지식을 말해줄 수 있지만, 그 이하의 사람에게는 말해줄 수 없다.”


(풀이)

 지식과 학습의 차별대우다. 알아먹을 만한 놈에겐 진리를 말해줄 수가 있지만, 알아먹지 못할 바보에게는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저 뒤 양화편에도 “아무리 해도 최상의 지자(智者)와 최하의 바보는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말해줄 필요가 없는 자와, 말해줘도 소용이 없는 자를 뺀 그 중간쯤을 가르쳐야 한다는 소리다. 사람을 지 맘대로 이리저리 재고 있어 -_-+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옹야편(雍也篇) 제 23 장  (0) 2013.11.06
옹야편(雍也篇) 제 22 장  (0) 2013.11.05
옹야편(雍也篇) 제 21 장  (0) 2013.11.04
옹야편(雍也篇) 제 20 장  (0) 2013.11.03
옹야편(雍也篇) 제 19 장  (0) 2013.11.02
옹야편(雍也篇) 제 18 장  (0) 2013.11.01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원문)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자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풀이)

 유명한 구절이다. 알고, 좋아하고, 즐기는 것의 목적어는 아마도 도(道)일 것이다. 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 그 도를 좋아하며 가까이하고자 하는 자, 이미 도를 체득하고 그것을 즐기는 자를 들어 배움의 경지를 설명하고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 근데 이 말 출처를 모르겠다.

<저 말을 검색하면 이 사람이 젤 먼저 뜬다. 그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논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옹야편(雍也篇) 제 22 장  (0) 2013.11.05
옹야편(雍也篇) 제 21 장  (0) 2013.11.04
옹야편(雍也篇) 제 20 장  (0) 2013.11.03
옹야편(雍也篇) 제 19 장  (0) 2013.11.02
옹야편(雍也篇) 제 18 장  (0) 2013.11.01
옹야편(雍也篇) 제 17 장  (0) 2013.10.31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