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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자왈, 거상불관, 위예불경, 임상불애, 오하이관지재.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 위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아니하고,

 예를 행하면서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며,

 상(喪)을 만나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 사람을 살피겠는가?"


(풀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예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구절이다. 예와 비례를 다루는 팔일편의 끝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사람들 위에서 남을 부리는 것이나, 형식과 절차에 맞추어 예를 갖추는 일, 상을 치르거나 조상을 하러 갔을 때에 예법에 맞게 하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너그러운 관용의 마음, 예를 행하는 상대를 공경하는 마음, 돌아가신 이를 슬퍼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내일부터는 네 번째 편 이인(里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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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자위소, 진미의, 우진선야. 위무, 진미의, 미진선야.


(해석)

공자께서 소(韶)음악을 평하시기를,

"아름다움의 극치로다! 게다가 선하기까지 완벽하니!"

무(武) 음악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아름다움의 극치로다! 선함은 좀 모자란 듯 하지만."


(풀이)

소(韶)는 전설적인 임금인 순(舜)임금의 음악이다. 왕조공식테마 음악 -_-;;;; 마찬가지로 무(武)는 주나라 무왕(武王)의 공식테마 음악이다. 그런데, 음악이 아름답다는 얘기는 알겠는데, 선하고 선하지 않다는 건 무엇일까? 덕에 의해 왕위를 선양 받은 순임금과, 역성혁명을 일으켜 창과 칼로 왕위에 앉은 주나라 무왕의 성격을 은연중에 비교해 본 것이 아닐까? 물론 그들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린 음악이었다면, 음악 자체도 그랬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좀 동의하기 어렵다. 음악은 음악, 정치는 정치지.

<그래, 내가 나찌 활동을 좀 했기로소니 나를 욕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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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儀封人請見. 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의봉인청견. 왈, 군자지지어사야, 오미상불득견야. 종자견지. 출왈, 이삼자, 하환어상호. 천하지무도야구의. 천장이부자위목탁.


(해석)

「의」땅을 지키는 관리가 면회를 청하여 말하였다.

"군자께서 여기에 오시면 저는 그 어느 분이나 반드시 뵙고 있는 것입니다."

종자가 면회를 시키니,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당신들은 무엇을 잃었다고 걱정스러워 하십니까?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하늘은 장차 당신들의 스승님을 천하의 목탁으로 삼으려고 하십니다."


(풀이)

「의」라는 땅은 위(衛)나라에 있는데, 국경지대에 있었다고 한다. 이 땅을 지키는 관리라는 이 사람은, 사람을 보고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름난 현자가 자기 관할을 통과하게 된다는 말을 들으면 항상 가서 만나보고 인물평을 했던 것 같다.

 무릇, 관문을 지키는 관리라는 사람들은, 직업이 그렇다 보니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보는 눈이 틔게 되는 것일까. 

 함곡관을 지나는 노자에게 도덕경을 써달라고 부탁한 것도 그런 문지기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안목과 식견이 없이, 그저 문 앞에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인 사람이었다면 그런 일을 해달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좀 옆길로 새자면, 아주 인상적인 수문장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그닥 재밌는 영화는 아니다 ㅋ>

 달라이 라마의 일생을 그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쿤둔"에서, 영화 말미에 중국 공산당에게 고국 티벳을 빼앗기고 인도로 망명하는 달라이 라마 앞에 국경을 지키는 경비대장이 다가와서 묻는다.

"감히 여쭈오니, 그대는 누구시옵니까." 벌써 말투부터 범상치 않다.

"보다시피 미천한 비구(뭐, 중이라는 뜻이다)일 뿐이오."

"당신이 부처시옵니까?" 오옷 ㅋ

"나는 그림자일 뿐이오.

물 위에 비친 달처럼, 나를 통해서 그대들 자신의 선한 그림자를 보기를 원할 뿐." 캬~ 역시 드립력은 불교가 짱이다 ㅋ

 내가 저 장면을 기억하는 것은 달라이 라마의 저 명대사 때문이었겠지만, 그런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고 저런 말을 던진 저 경비대장도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말고 ㅋ


 아무튼 다시 공자와 "의"땅의 봉인에게 돌아가자. 이 사람은 공자가 '천하의 목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엔 목탁이냐 ㅋ 이 목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스님이 두드리는 그것과는 약간 다른데, '쇠 방울에 나무 혀를 끼운 것'이라고 한다. 나라에서 새로운 훈령을 반포할 때, 이 목탁을 흔들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고 한다. 보통, 선각자, 계몽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요컨대, 이 사람의 공자에 대한 평가는, '어지러워진 세상을 일깨우는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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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語魯大師樂曰, 樂其可知也. 始作翕如也, 從之純如也, 如也, 繹如也, 以成.

자어노대사악왈, 악기가지야. 시작흡여야, 종지순여야, 교여야, 역여야, 이성.


(해석)

공자께서 음악에 대해 노나라의 악장에게 말씀하셨다.

"음악은 이러한 것이지. 첫머리는 종으로 음을 높이고, 그에 따라 여러 악기의 깨끗한 조화로 합주를 이루며, 각 음이 또렷하고 끊임없이 해서, 마침내 이루어내는 것이다."


(풀이)

 오지랖도 졸라 월드클래스인 공자의 음악에 대한 이해다. 이제는 하다하다 악장에게 음악을 주제로 잔소리를 하고 있다. 정말 잘났다 잘났어. 도대체 모르는 건 뭐며 안해본건 뭔지...

<완전 똘똘이스머프임 ㅋ >

 大師는 음악을 맡은 관리의 우두머리, 즉 악장을 말한다. 翕은 합함, 從은 풀어놓음, 純은 조화함, 皦는 분명히 함, 繹은 서로 이어져 끊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도 제 할 일을 다 하도록 해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내려는 자세가 엿보인다. 이 말은 음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닐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근데, 저런 식으로 연주하면, 아름다운 소리는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재미는 없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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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乎. 曰, 然則管仲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 管氏亦有反.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자왈, 관중지기소재. 혹왈, 관중검호. 왈, 관씨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호. 왈, 연즉관중지예호. 왈, 방군수색문, 관씨역수색문. 방군위양군지호, 유반점, 관씨역유반점. 관씨이지례, 숙불지례.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의 그릇은 작았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관중은 검소했었나요?"

말씀하시기를,

"관중은 성(姓)이 다른 세 아내를 두었고, 가신에게 업무를 겸임시키지 않았다.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묻기를,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나요?"

말씀하시기를,

"보통 임금이 문 앞에 작은 담장을 쳐서 문을 가리는데, 관중도 역시 문 가리개로 작은 담을 쳤다. 두 나라의 임금이 우호를 다질 때 술잔 놓는 대를 만드는데, 관중도 그걸 썼다. 관중이 예를 알았다고 하면, 예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풀이)

 관중, 성은 관(管), 이름은 이오(夷吾), 중(仲)은 그의 자. 제(齊)나라의 명재상으로, 임금인 환공(桓公)을 도와 패자(覇者)로 만들었다. 친구 포숙아(鮑叔牙)와의 우정으로,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고사를 남겼다. 언제 얘기할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건 진짜 백퍼 포숙아가 진국인 거다... 관중쉐이... 춘추시대를 통틀어 명재상을 둘 꼽으라고 하면, 전기에 제나라의 관중과, 후기에 정나라의 자산(子産)을 꼽는다. 이러한 엄청난 인물을 그릇이 작은 인물이라고 공자는 평하는 것인데,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의 "관중은 그릇이 작아."라는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은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작은 그릇 = 쪼잔함'이라고 생각해버리고는 "관중은 검소했나요?"라고 묻는다. 공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三歸는, 돌아갈 집이 세군데 있었다는 뜻으로, 그 집마다 아내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부럽... 그런데 당시의 일부다처 풍습에서는, 자매가 함께 시집오는 일도 있었는데, 그 경우 아내들^^;;;은 집을 따로 두지 않고 같은 집에서 살았다. 덮쳐보니 처제... 즉, 3귀는 성씨가 다른 세 아내를 의미한다. 가신에게 겸임을 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일에 전담자가 있어서, 거의 임금처럼 집안에서 행세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뭐 요즘 상식으로나 그때 기준으로나 "검소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삶이다. 


 이 '어떤 사람'은 '그릇의 크기'와 '검소함'에 대한 인식도 잘못되어 있지만, '검소하지 않다 = 예를 안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나보다. 사치스럽고 까다로운 예법을 차리면 예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럼 검소하지 않았으니, 예를 잘 알았나요?" 공자의 대답은 역시 "아니오"다. 어쩌면 속으로 으이구 이 답답아... 라고 하....

 보통 대문을 만들고 그 안을 쉽게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천자는 담장을 대문 밖에 세우고, 제후는 대문 안에 세우며, 대부는 발을 치고, 선비는 휘장을 내려뜨리게 되어 있다. 이것이 예이다. 관중은 대부이므로 발을 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인데, 자기가 섬기는 임금과 같은 것을 세웠다. 그리고, 술잔 놓는 대는 흙을 빚어 만들고 칠을 하는데, 외교석상에서 쓰인다. 관중은 이것을 자신의 사사로운 회합에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 을 하는 것'은 '해야 할 것을 안하는 것' 보다 더 큰 비례(非禮)다.


 공자가 관중의 그릇을 논한 것은 다른 이유다. 제나라의 막강한 국력, 거기다 영명한 군주 환공의 자질, 관중 스스로의 역량이라면 제나라 뿐만 아니라 천하를 더욱 훌륭하게 만들 수 있었으리라 본 것이다. 패도(覇道)란 어디까지나 힘으로 천하를 억눌러서 다스리는 것이 아닌가. 그 정도 능력과 여건이 된다면 천하를 덕으로 다스려 진정한 왕도(王道)정치를 실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공자는 그런 점을 아쉬워하고, 그에 이르지 못한 관중의 그릇을 작다고 한 것이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였다." 이런 친구가 어딨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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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曰, 使民戰慄也. 子聞之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애공문사어재아. 재아대왈, 하후씨이송, 은인이백, 주인이율. 왈, 사민전율야. 자문지왈, 성사불설, 수사불간, 기왕불구.


(해석)

애공이 사단(社壇)에 대해 재아에게 물었다. 재아가 대답하였다.

"하나라 임금은 소나무를 썼고, 은나라 사람은 잣나무를 썼으며, 주나라 사람은 밤나무를 썼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을 부리는데 전율시키란 말이군."

공자께서 그것을 듣고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진 일을 말해 무엇하며, 다 된 일을 간하여 무엇하며, 지난 일을 탓해 무엇하랴."


(풀이)

 애공은, 앞에도 설명했듯이 신하에게 쫓겨 외국에서 생애를 마친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특정한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하여 토지신을 제사지내는 사단의 나무를 어떤 나무로 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보고 있는데, 대답하는 사람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 자공과 더불어 대표적인 웅변가인 재아로서, 이름은 여(予), 자는 자아(子我)다. 자공보다 말솜씨는 더 뛰어났지만, 사람됨은 훨씬 못 미친다는 평을 들었는데, 공자는 이 제자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재아를 탓하고 비난하는 모습은 논어 곳곳에서 나온다. 그것도 앞에서 뭐라하다가 말재주에 휘둘릴 거 같으니까 뒷다마를 까는 그런...

<아 씨 귀가 왤케 가렵지?>

 그건 그렇고, 왜 이런 질문이 나왔을까? 역사적인 배경으로는 애공 4년에 박(亳)고을의 사단이 화재를 입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사단을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 나무를 새로 정해야 하는 거다. 노나라의 경우엔 주나라 계통의 왕실이므로 밤나무를 써야하지만, 박 고을은 옛 은나라의 수도이므로 은나라 식으로 잣나무를 쓰는 것이 맞다. 그러므로 재아는 그냥, "은나라 사람은 잣나무를 썼습니다." 하면 될 것을 말솜씨와 지식을 뽐내느라 하나라, 은나라를 거쳐 주나라까지 얘기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말솜씨가 뛰어난 젊은이가 임금에게 자기 지식을 자랑한 것만으로 끝난다. 하지만 여기서 이 비극적인 일생을 살았던 군주는 한 번 더 탈선한다.

 주나라에서 사단은 처형장이기도 했다. 권세가 세 집안의 횡포에 분노하던 힘없는 군주는 그 버릇없는 신하들을 처형하는 환상을 본다. 그리고 그 사단의 신목의 발음 율(栗:밤나무)에서 전율(戰慄)로 비약한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공자는 탄식한다. 애공의 비극적인 미래를 뚫어본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다이루어져 버린 일, 다 된 일, 지나간 일을 얘기해서 무엇하랴만... 하는 말에 씁쓸함이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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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관저, 락이불음, 애이불상.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저는, 즐겁되 음란하지 않으며, 슬프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풀이)

관저(關雎)는 시경의 첫머리에 있는 주남(周南) 첫편의 시 이름으로 아리따운 아가씨가 좋은 짝을 만나는, 그래서 ㅍㅍㅅㅅ를 하... 행복한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다. 이미 위정편 2장에서 전편을 설명한 적이 있는 노래다. 그 장에서 공자는 시경의 300편 시를 통틀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거니와, 이 장에서는 그 첫 시를 구체적으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얘기인데, 淫은 樂이 지나쳐 그 바름을 잃는 것이고, 傷은 哀가 지나쳐 그 조화를 잃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생각하는 禮는 그 절제가 있어야 함으로, 기쁨과 슬픔의 한계선을 짓고 있는 것이다. 재미없는 영감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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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정공문, 군사신, 신사군, 여지하. 공자대왈, 군사신이례, 신사군이충.


(해석)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데에는 예(禮)로써 하며,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에는 충(忠)으로써 합니다.”

(풀이)
 정공은 노나라의 군주로서, 이름은 송(宋)이고, 정(定)은 시호인데, 「크게 염려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평안케 하고 옛 법도를 본 받았다」고 하여 저런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어지러운 노나라에서 그래도 좀 괜찮은 군주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물어보는 질문도 원론적이지만 꼭 알아야 할 것을 물어보아야 할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공자의 대답 역시 당연한 얘기인 듯 보이지만, 저것이 가장 근본이 되는 얘기이고, 정론이 아닐까. 물론 무게중심은 앞 구절에 있다.  "당신이 임금이라 하여 신하를 종 다루듯 하지 말고 예를 갖추어 대하시오." 라는 얘기다. 공자는 이 임금 밑에서 생애 가장 높은 벼슬을 지낸다.


 북송의 유학자 여대림은 이 장에 대하여, "군주가 신하를 부림에는 신하가 충성하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예가 지극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하며, 신하가 군주를 섬김에는 군주가 예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충성이 부족함을 걱정해야 한다." 고 했다. 학이편의 마지막 장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를 떠올리게 한다. 군주와 신하는 의(義)로써 맺어져 있음으로, 군주는 신하에게 예를 주어야 하고, 신하는 군주에게 충을 바쳐야 한다. 받는 것만을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주는 것에 부족함이 없는지 스스로 돌이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2500년 전, '사람은 서로 동등하지 않으며, 신분에 따라 존귀하고 빈천한 것이 다른데, 그 다름은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고 믿었던 때에도, 군주가 신하를 대할 때는 예의를 잃지 말 것을 새삼 깨우쳐주고 있다. 

 하물며, '백성(民)이 주인(主)인 세상이 되었다'고 하는 오늘날, 이른바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 아랫사람에게 예의를 잃어서야 될 말인가.

 백성의 소리를 들을 줄 모르고, 두려워 할 줄 모르며, 마침내 예의를 잃고 존중할 줄 모르는,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이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제목은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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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자왈, 사군진례, 인이위첨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아첨이라고 한다."


(풀이)

예가 문란해져 있을 때에는 올바른 예의가 도리어 아첨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오래전 이런 우스개도 나돌았었다. 


내가 침묵하면 생각이 깊은 것이고, 남이 침묵하면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내가 늦으면 사정 때문이고, 남이 늦으면 게으름 때문이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바쁜만큼 유능한 것이고, 남이 자리를 비우면 어디서 노는 것이다.

내가 화를 내면 소신이 뚜렷한 것이고, 남이 주장하면 고집불통이다.

내가 통화를 하면 업무상 긴급한 것이고, 남이 통화중이면 사적인 일이 너무 많은 것이다.

내가 아프면 아픈만큼 쉬어야 하고, 남이 아프면 기본적인 체력마저 의심스러운 것이다.

내가 사무실에 가족사진을 걸어놓으면 가정의 화목이 자랑스러운 것이고, 남이 사무실에 가족사진을 걸어놓으면 직장에서도 집생각만 하는 것이다.

내가 회의중이면 남은 잠깐 기다려야 하고, 남이 회의중이면 나는 잠깐 만나야 한다. 

내가 남의 말을 들으면 폭이 넓은 사람이고, 남이 남의 말을 들으면 줏대가 없는 사람이다.

내가 이성과 사귀면 로맨스, 남이 이성과 사귀면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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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貢欲去告朔之犧羊. 子曰, 賜也, 女愛其羊. 我愛其禮.

자공욕거고삭지희양. 자왈, 사야, 여애기양. 아애기예.


(해석)

자공이 고삭제사에 양을 희생으로 바치는 것을 없애려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는구나. 나는 그 예를 아낀다."


(풀이)

 고삭이란, 매월 초하루에 종묘에 나가서 삭(朔: 초하루)을 고하는 의식을 말한다. 달의 초하루를 정하고, 따라서 달의 크고 작음과 윤달을 정하고, 계절을 조정하며, 그것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일로, 지금처럼 과학적인 역법이 시행되지 않을 때에, 이것은 천하와 제후국의 백성들의 생활을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천자, 즉 왕은 새해 첫날 제후들에게 천하에 공통된 역법을 시행하고자 달력을 나누어 주고, 제후들은 매월 초하루에 고삭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이 행사에 희생의 제물로써 양 한 마리를 바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즈음에는 왕실은 힘을 잃어, 제후들에게 달력을 나누어주지도 않았고, 제후국에서도 고삭행사를 빠뜨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게다가 노나라의 경우, 자주 초하루를 틀렸다는 기록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원래의 좋은 취지는 사라지고, 애꿎은 양만 매달 한 마리씩 죽어나가는 거다. 경제에 예민한 사람이었다는 자공이 보기엔, 이건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섀키들이 양이 한 마리에 얼만데 아까운 줄 모르고... 그래서 그 양을 아끼려고 했던 것인데, 공자는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라는 뜻으로, 제자를 말린다. 양을 희생으로 바치는 의식이 남아있으면, 그래도 그 이름과 흔적이라도 남아, 훗날 그 예를 복원시킬 수가 있지만, 그것마저 없애버리면, 그 예 자체의 소멸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럼 그 양의 목숨은? 생명존중의 이념은? 동물애호의 정신은? 대답해봐라 공자 영감탱...

<걱정마, 내가 널 지켜줄께.>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상이란 완벽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훌륭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도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면, 갖가지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기존의 체제와 구조를 모두 없애고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그 또한 얼마나 큰 낭비일까. 오히려 문제가 되는 부분을 조금씩 조금씩 고치고,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제 기능을 발휘하는 데에 힘쓰는 것이 더 손쉽고 빠른 길이 아닐까. 

 초하루를 맞이하는 의식이 잘못되어 있다면, 그것을 원래대로 바로잡으면 될 일이지, 굳이 그 의식 자체를 없애야만 할까.

 여성가족부가 헛발질을 계속해댄다면, 본래 그 부처가 해야 할 일에 매진하도록 바로잡아주면 될 일이지, 굳이 그것을 없애야만 할까.

 정당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표류한다면, 다시금 제 역할을 하도록 아래에서부터, 안에서부터 쇄신해 나가면 될 일이지, 굳이 정당정치 자체를 없애야만 할까.

 판을 통째로 갈아엎고 새로 만들어내기보다, 기존의 틀 안에서 망가지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바로잡는 보수(補修), 그것이 진정한 보수(保守)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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